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영당에서 출발해 서원과 사우의 공간 구성을 간직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의 지산재예요.
지산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예요. 신라 말 학자 고운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경주 최씨 문중이 최치원을 배향하기 위해 조성한 역사 공간이에요.
현재 지산재는 강당을 중심으로 외삼문, 동재, 서재, 내삼문, 영당이 배치된 모습을 보여줘요. 앞쪽에는 외삼문과 동재·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내삼문과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 자리해 있어요.
지산재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에요. 중앙 3칸은 마루이고 나머지 1칸에는 방을 둔 구조로, 강당으로 복설된 건물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어요.
지산재의 기원은 1737년에 세운 영당에서 시작돼요. 당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의 경주 최씨 문중은 시조인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영당을 세웠어요.
1846년에는 경주 최씨 문중과 지역 유림들이 최치원 외에 최운한, 최형한, 정오도를 추가로 모셨어요. 이때 영당은 지산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서원이 되었어요.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지산사의 건물은 철거되고 영당만 남게 되었어요. 1922년에는 경주 최씨 문중을 중심으로 강당을 복원하고 이름을 지산재로 바꾸었으며, 최치원만 모셨어요.
그 뒤 내삼문과 외삼문이 건립되면서 지금과 같은 지산재의 배치가 갖추어졌어요. 조선 후기 문중에서 시조를 어떻게 제향했는지, 또 서원 철폐령 이후 사우가 어떻게 다시 세워졌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에요.
지산재 앞쪽에서는 외삼문과 동재·서재를 함께 볼 수 있어요. 동재와 서재는 지산재 양옆에 배치된 부속 건물로, 서원식 공간 구성을 보여주는 요소예요.
지산재 뒤쪽에는 내삼문과 영당이 있어요. 내삼문을 지나면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이어지는 배치여서, 강당과 사당이 앞뒤로 나뉜 제향 공간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어요.
지산재 본채의 마루와 방 배치도 눈여겨볼 만해요. 정면 4칸 가운데 중앙 3칸에 마루를 두고 한 칸에 방을 둔 구조라서, 강당의 공간 구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지산재의 편액은 김규태가 작성했어요. 건물 옆에는 1985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어 지산재의 건물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