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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경남

유학사(의령)

이 글에는 제휴 링크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소정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미타산(彌陀山, 높이 662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약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찰(古刹)이다. 조선 개국 직후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1399년(정종 1년) 창건하였다. 무학대사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유학사 자리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극락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만세루, 극락전 왼쪽에 종각, 극락전 오른쪽으로 요사 두 동이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다. 칠성각은 요사 뒤쪽의 계단 위쪽에 있다. 주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 금동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원래 오동나무로 만든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1980년대에 어디론가 이운되었다 한다. 그때 삼존불 중 주존불을 본떠 석고상으로 남겨 두었는데 2002년 새로 조성한 현재의 주존불은 그 석고상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만세루(萬歲樓)는 루(樓)의 입지 즉 사찰의 정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제 누각 형식의 건물이 아니다. 단층 건물인 데다 누문도 없으며, 툇마루가 달린 요사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 걸려 있는 편액도 유학사(留鶴寺)라고 되어 있지만 사찰에서는 만세루라고 부른다. 이 건물에는 1900년 이태현(李泰鉉)이 지은 ‘법당중수기’ 등 유학사의 연혁을 알려주는 현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 무학대사와 유학사의 이야기 * 원래 유학사는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조선 초기 때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이 유학사에 들려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기 때문에 당시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 개국과 함께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유학사의 전설 또한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 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 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조선 초기 정종 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

입장료
정보 없음 — 방문 전 확인 권장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여배로5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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